저번 포스팅에서 재료 시뮬레이션이 어떤 것인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재료공학자들은 재료 시뮬레이션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시뮬레이션 단독으로 어떤 성과를 내는 것이다. 즉, 앞서 살펴본 재료의 기계적, 열적, 광학적, 전기적, 자기적, 화학적 성질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단순 물성 측정으로 의미 있는 연구가 되기는 어렵고, 왜 그 재료의 물성이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을 추가하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물성들은 실험으로도 측정할 수 있고, 대부분의 재료 물성은 이미 측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 물성 측정이 의미를 가지는 경우는 새로운 재료를 합성했을 경우(그리고 측정하려는 물성이 아직 실험적으로 측정되지 않은 경우)뿐이다.
시뮬레이션을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이 가진 특성을 이용해야 한다. 시뮬레이션은 일반 실험과 달리 1) 실제 재료를 소모하지 않고, 2) 실제 실험에 비해 더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고 3) 원자 수준에서 재료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다(원자 모델의 경우)는 장점이 있다. 이를 고려할 경우, 시뮬레이션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 첫 번째는 실험을 대신하는 것이다. 바로 위 문단에서 실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계산으로 다시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었지만, 실험에 드는 비용이 클 경우에는 시뮬레이션으로 실험을 대체할 경우 실험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산업에서 활용할 경우 의미가 생긴다. 또한, 이런 경우는 보통 시뮬레이션이 실험보다 빠른 경우가 많고, 일반적으로 실험에 비해 병렬화가 용이하다. 실험 같은 경우, 동일한 실험을 여러 곳에서 진행하기 위해서는 같은 조건의 실험실을 여러 곳 마련해야 하지만, 시뮬레이션의 경우 컴퓨팅 자원만 충분하다면 가용 자원 내에서는 자유롭게 병렬 진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단순히 실험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험으로는 전부 확인하기 어려운 많은 테스트를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데 이를 스크리닝(Screening)이라고 한다. 기존에는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 스크리닝의 효과 역시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201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스크리닝 역시 여러 연구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시뮬레이션 활용법 그 두 번째는 시뮬레이션을 이용하여 새로운 재료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료공학자들이 새 재료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여러 합성 방법을 테스트해 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원하는 재료를 디자인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재료공학자의 직관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즉, 사람의 손을 많이 타고 원하는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테플론 등 우연에 의해 개발된 재료의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이용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아직 합성되지 않은) 가상의 재료를 만들어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 역시 최근에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재료의 조성만 고정한 다음,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재료의 결정 구조를 이리저리 변화시켜 보고 그 중 실제로 실험을 통해 합성할 수 있을 법한 재료들을 추려내는 것이다. 그다음, 이러한 재료 중에서 원하는 특성을 갖는 재료를 선택한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제작된 재료들이 실제로 실험적으로 100% 합성이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 있는 재료를 탐색한다는 측면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활용법은 재료의 특성에 대한 실험적 결과를 이론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실험의 경우, 재료의 특성을 '관측'할 수는 있지만 왜 이 재료가 이러한 특성을 가지는지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원자 수준, 혹은 전자 수준에서 재료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는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과전자현미경 같은 경우 원자 수준의 사진은 얻을 수 있지만, 이는 이미 안정화된 시료의 단면에 대한 것일 뿐, 실제 제품 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조성의 변화나 부반응 등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재료 시뮬레이션은 원자 모델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재료의 특성을 계산하는 만큼 그 재료의 특성과 재료의 원자 및 분자구조 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특히 시뮬레이션이 꼭 필요한 분야는 반응 메커니즘 분석인데, 아직은 실험적으로 수 나노초 ~ 수 밀리초 단위의 반응 과정 중 재료 내부 원자 구조의 변화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므로, 반응 메커니즘 분석을 위해서는 시뮬레이션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예로는 상변화 메모리(Phase Change Memory, PRAM) 등에서 주로 고려하는 재료의 상변화 분석 혹은 분자 반응에서 주로 사용되는 촉매 작용의 분석 등이 있다. 따라서 실험과 시뮬레이션의 협업은 재료의 특성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Nature, Science 등 상위권 저널에 게재되는 논문들을 보면 실험 결과 및 시뮬레이션을 통한 분석이 모두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우리는 재료 시뮬레이션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알아보았다. 실험과 마찬가지로, 재료 시뮬레이션 역시 다양한 목적에 맞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며, 이를 적절히 선택하는 것 역시 재료공학자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시뮬레이션 방법에 대해 알 필요가 있으며, 각 방법의 장단점 역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여러 가지 재료 시뮬레이션 방법들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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