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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재료공학

제일원리 계산 소개

by NC_ 2022. 6. 16.

재료를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한 실험 방법이 다양한 것처럼, 재료 시뮬레이션 역시 다양한 방향으로 시뮬레이션 방법론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방법론이 생기더라도 재료 시뮬레이션이 지금처럼 재료 연구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을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제일원리(First principles calculation, ab-initio calculation) 계산을 고를 것이라 생각한다.

 

 

제일원리 계산이라는 이름은 이 계산이 '첫 번째' 원리로써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첫 번째 원리 말이 무엇인지 궁금할 텐데, 이는 이 계산에 다른 외부 상수가 필요 없다는 의미이다. 조금 다르게 설명하자면,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앞선 포스팅에서 예로 들었던 빌딩 위에서 공을 떨어뜨리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공에 작용하는 중력 및 그로 인한 힘은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통해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 하지만, 우리가 공기 저항이나 공 표면의 요철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워 실제 상황을 단순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설 등이 일종의 외부 상수가 된다. 즉, 공기 저항이나 공 표면의 요철로 인한 영향을 표현하는 계산식은 완전하지 않다. 다시 재료 시뮬레이션 얘기로 돌아가서, 제일원리 계산이 완전하다면 결국 우리는 그 계산을 이용하여 재료의 특성을 정확하게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안다면 왜 필자가 제일원리 계산을 재료 시뮬레이션에 기여한 일등 공신으로 뽑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대비 열화된 모델을 통해 재료의 특성에 대한 일종의 직관을 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 역시 상당히 중요한 일이지만) 시뮬레이션 역시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본질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우리의 희망처럼 녹록하지 않다. 만약 제일원리 계산이 정말 완벽하고 우리가 이를 통해 재료의 특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면 최소한 재료 시뮬레이션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재료 실험이 완전히 도태되고, 재료 시뮬레이션이 유일한 정답으로서 기능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실험은 실험 장비의 오차라거나 외부 환경의 변화 등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 정반대이다. 실험이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시뮬레이션은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그럴까? 이는 제일원리 계산에서 사용하는 수식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제일원리 계산에서 사용하는 수식은 슈뢰딩거 방정식(Schrodinger's equation)이다. 이는 전자의 파동함수를 계산하기 위한 방정식인데, 전자의 파동함수라는 말이 어색한 사람들은 그냥 전자의 움직임을 계산하기 위한 수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재료는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들 간의 결합은 서로 다른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핵 및 전자의 전기적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료 내 전자의 움직임을 통해 재료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재료에 대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면 우리는 재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슈뢰딩거 방정식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다. 보다 정확하게는, 주어진 시스템(재료)에 전자가 한 개 이상 포함되어 있으면 풀 수 없다. 이는 전자들 간에도 상호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우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슈뢰딩거 방정식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풀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도 근사가 필요하다는 것만 알면 된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개의 전자를 상호 작용하지 않는 전자라고 가정한다. 이 가정을 적용할 경우, 이러한 상호작용하지 않는 전자들의 밀도를 이용해서도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 수 있다. 이를 밀도 범함수 이론(Density Functional Theory, DFT)이라고 하며, 이를 고안한 연구자들은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내용은 이 포스팅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므로, 밀도 범함수 이론의 실제적인 가치에 대해 말하자면, 드디어 재료 연구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재료에 대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밀도 범함수 이론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제일원리 계산이라고 할 수 없다. 방정식을 풀기 위해 일종의 트릭을 사용했고, 이 때문에 계산 결과가 부정확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초가 되는 방정식을 모른 채로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불확실한 근사를 하는 것과 기초가 되는 방정식은 명확하나 우리의 한계로 방정식을 좀 더 쉬운 방법으로 푸는 것은 전혀 다르다. 후자의 경우 계산에 따른 오류의 원인 역시 우리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어쨌든 오류를 보정하면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자에 비해 명확한 장점이 존재한다. 정리하면, 재료 시뮬레이션의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필자의 주관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제일원리 계산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도 재료의 특성에 대한 정답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일원리 계산의 근간이 되는 슈뢰딩거 방정식은 풀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밀도 범함수 이론이라는 대안을 이용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계산 결과에 오류가 생긴다. 하지만, 여전히 슈뢰딩거 방정식은 제일원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 방정식이므로, 우리가 밀도 범함수 이론으로 얻은 결과는 약간의 오차가 있더라도 충분히 연구에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번 포스팅에 이어 실제로 밀도 범함수 이론을 사용할 경우 슈뢰딩거 방정식을 어떻게 풀게 되는지, 그리고 제일원리 계산은 어떤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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